망.. 했다
라는 말로 첫 편지를 시작하게 되어 참으로 죄송합니다. 글을 쓰려고 화면을 켜자마자 망했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단어 하나하나 고민하느라 편지를 쓰는 데 한세월이 걸릴 것 같다는 제 우려가 예상보다 빠르게 현실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첫 편지의 인사말이라니. 정말 너무 고민이 되지 않나요? “안녕하세요”라는 흔한 말은 도무지 하고 싶지가 않았거든요.. (그렇다고 별안간 망했다고 외치고 싶었던 것도 아니지만요.)
횡설수설 써내려갔지만 이 첫 문단이 저라는 사람을 꽤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단어 하나만 떠올려도 수천 가지 생각이 나서 괄호 없이는 글을 쓸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글 쓰는 걸 그래서 어려워하지만 그래서 좋아해요. 언제까지고 지금처럼 생각이 많고 할 말이 넘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몇 년만 더 지나도 뜬구름 잡는 생각들은 넣어두고 현실에 집중해야 할 시기가 오겠지요. (지금은 현실과 괴리된 생각들도 많이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 많이 생각하려고 하고, 그 생각들을 많이 기록해 놓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걸(메일링) 하는 겁니다!
갑작스러운 본론에 당황하셨나요.? 허허.
저는 8월 27일 부로 한국을 떠나요.(요즘 유행하는 스팸 문자 아님, LINE 계정 없어요..) 만리타국 스페인의 말라가대학교에서 앞으로 두 학기를 보낼 예정입니다. 그곳에서 보내게 될 편지의 주기는 일주일에 한 번, 내용은 아주 자유로울 마음입니다. 학교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맛집 추천, 여행 일지 등등~ 도 물론 좋지만.. 그보다는 소소한 일기와 스페인 하늘의 뜬구름을 잡는 생각들이 주를 이룰 것 같습니다. (같은 뜬구름이어도 스페인의 구름은 좀 색다르지 않을까요?) 또 그리운 한국을 떠올리며 듣는 한국 노래 추천, 이따금씩의 심경 고백, 좀좀따리 편집한 영상이나 필름 사진도 곁들여볼 생각입니다. 어느 날은 덜렁 사진 하나, 녹음파일 하나가 전송되어 있어도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말했다시피 저는 할 말이 많은 사람이라, 여기에 담지 못할 말들이 아득히도 많습니다. 원래는 떠나기 전에 드는 복잡한 감정에 대해 써볼까도 했었습니다. 얼마 안 가 "첫 편지이니만큼 아쉽지만 가볍게 쓰자"고 마음을 바꾸었습니다만, 가벼워지려고 하면 딱 그만큼 무거워지기 일쑤여서 어떻게 잘 쓰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엊그제 친구들과 질문 카드를 뽑아 돌아가며 답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중 하나가 “작년에 얻은 교훈이 있다면?”이었습니다. 그때는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지금 그 대답이 떠오르네요. ‘아쉬움이 다음을 기약해 준다는 것’. 그게 작년에 배운 교훈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앞으로 제가 보내게 될 편지는 아쉬움을 없애기보단 남기는 쪽이 되면 좋겠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 전체가 그랬으면 싶기도 하구요. 저는 어차피 느낄 아쉬움이라면 그 존재를 미리 인정하고 보자는 쪽입니다. 일종의 '숙이고 들어가기' 권법이죠..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냥 사랑해버린다"는 이옥섭 감독님의 말에서 '싫어하는 사람'을 '아쉬움'으로 치환한 것이라고 멋있게 말해볼 수도 있겠네요.
여하간 저와 저의 글은 이런 식입니다. 이 시점에 '교환학생 짐 싸는 꿀팁'보다는 '아쉬움'에 대해 더 할 이야기가 많은 그런 식이요.. 해외에서의 화려한 수기를 기대하셨다면 이거 참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중간 중간 그런 글도 쓸 수 있을 겁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거니까요. (숙이고 들어가기 권법 재활용)
예고글에 올렸던 것처럼, 본격적인 편지를 시작하기 전에 두 편의 프롤로그를 부치려 합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이 편지이고, 두 번째 프롤로그는 다음 주 금요일인 8월 23일 낮 12시에 전송되겠습니다. 두 통의 프롤로그를 먼저 전송한 후, 앞으로 스페인에서의 메일링을 이어서 받을 것인지를 한 번 더 여쭤볼 예정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거창해 보이네요... 이봐 가벼워지려는 만큼 무거워진다고 제가 말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생각해 주면 감사하겠습니다. 받는다고 해놓고 안 읽으셔도, 몇 주 동안 미뤄두었다가 유난히 지루하게 흘러가는 어느 날에 꺼내보셔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편지의 정확한 주기와 제목, 이전 편지를 볼 수 있는 곳과 답장을 남길 수 있는 통로 등은 프롤로그 기간 동안 더 생각해 보려 합니다. 앞으로 정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기약할 다음이 많아 마음이 풍족해지는 밤이네요! (여러분이 이걸 읽게 되실 시간은 밤이 아닐 수 있지만, 편지를 쓴다는 것은 응당 밤과 어울리는 작업이라 저는 앞으로도 많은 밤을 편지에 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 편지에서 뵙길 바랍니다.
추신 1.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첫 편지를 보낸다면 그 첫 인사말을 뭐라고 쓸 것 같나요? 한 번 생각해 보셔도 좋겠네요. 저는 가끔 이런 문제가 면접 질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님 말고요)
추신 2.
맨 위에 첨부한 사진은 예고글의 배경이기도 했는데요, 사실 5년 전에 스페인 여행을 했을 때 말라가 숙소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누구는 웬 뜬금없는 도넛과 요거트 사진이냐?! 하고 호통칠 수 있겠지만 (@: 누가 그래요?) 다 이유가 있는 사진이었다는 거죠ㅎㅎ. 저는 이렇게 아는 만큼 이해되는 사진들, 농담들, 음악들이 좋아요. 같은 의미에서, 오늘 메일의 제목 역시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노래의 리듬대로 읽어주셔야만 합니다. 그럼 정말 다음 주에 뵈어요! 근데 원래 추신을 이렇게 길게 쓰기도 하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