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수: 끝이 없잖냐? 유재석: 알려주면 좋을텐데..)
그쵸. 맞는 말이에요.
모든 것에는 끝이 있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 버스가 지하철 2호선처럼 순환하기라도 해봐요, 버스 안내방송은 끝없는 돌림노래가 되어 이어폰을 뚫고 들어올겁니다 ㄷㄷ.
왜 모든 것에는 끝이 있는 걸까요. 그리고 그 끝은 왜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것일까요. 방학이 시작되고 출국 전까지 남아있는 시간들을 보내면서, 저는 무언가 이상한 기분을 느껴왔습니다. 어쩐지 생소하고 약간은 부자연스러운 그런 기분이요. "교환학생 너무 좋겠다~"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많이 바쁘지?" 하는 주변의 질문을 받을 때면 특히 어정쩡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쁜 기분은 절대 아닌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말그대로 어정쩡한 기분이었습니다.
끝이 없는 정류장 안내방송에 대해 생각하다가, 느닷없이 그리고 어렴풋이 그 기분의 정체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끝을 알고서 달려가는 기분’이었어요. 이 기분은 왜 어딘가 이상했던 걸까요? 제가 생각을 해봤는데요, ‘끝을 알고'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1년 후면 돌아올 것을 알지만, 출국일은 제게 하나의 커다란 ‘끝’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끝의 존재를 알면서 그를 향해 하루하루 달려가는 기분이 마냥 신나지만은 않았나봅니다.
우리는 사실 많은 경우에 의식하지 못한 채로 끝을 맞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방학이 그렇고, 연휴가 그렇죠. 사실 이 여름부터가 그렇습니다. 역대 최장기간의 열대야도, 징글징글한 더위도 얼마 후면 사라져 있을 겁니다. 이제 좀 선선하다 싶을 때쯤, 이미 서늘해져버린 바람이 코끝을 스치겠죠. 예상치 못한 여름의 끝에는 면역도 안 생깁니다. 여름은 매년 끝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때마다 꼬박꼬박 잦아지는 재채기와 콧물을 감내합니다. 곧이어 높은 확률로 “가을 타나봐” 증상을 겪습니다. 이내는 다음 여름이 오기까지 “여름이었다”라는 과거형의 구절만을 되뇌게 됩니다. 매년 똑같이 반복되어도, 매년 준비없이 여름을 끝내죠.
그럼, 예상할 수 있는 끝이라면 더 좋아야 하는거 아닐까요? 끝이 오기 전에 준비도 하고 대비도 할 수 있으니까요.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 뭐 꼭 그렇지만은 않은가 봅니다. 끝을 알고 있어도 완벽하게 대비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고, 알면서도 대비하지 못하는 기분은 꽤나 어정쩡했습니다. 한국에서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사실 전 잘 모르겠어요. 한국 음식을 많이 먹어둔다고 해서 한식 생각이 안 날까요? 친구들과 가족들을 많이 만나둔다고 해서 그립지 않을까요? 물론 유독 한식이 땡기고 사람들이 그리운 날이 있겠지요. 하지만 반대로 한식 생각도 안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느라 바쁜 날도 있을 겁니다. 끝난 이후에 변할 이 모든 것들에, 어떻게 대비해야 좋을까요. 끝을 완벽히 대비할 방법이 있기는 할까요?
그래서, 가끔은 끝을 알고도 대비하지 않는 것보다 끝을 몰라서 미처 대비하지 못한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겁니다. 대비하지 못할 끝이라도 미리 아는 게 백배 천배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예상했든 예상하지 못했든, 끝이란 어느 정도의 통증을 남기기 마련이라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치만, 그 어떤 끝이라도 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질문만은 남기고 싶습니다. 예상치 못한 끝은 예상치 못한 시작을 불러오기도 하니까요. 이 글을 읽고 각자의 앞에 놓인 끝을 한 번 들여다보셔도, 또는 그냥 모른 체하며 끝이 오길 기다리셔도, 아무래도 좋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두 번째 글부터 끝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어 분위기가 추욱 처진게 아닌가 걱정이 좀 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프롤로그의 시작이었던 저번 글은 첫 인사말에 대해, 프롤로그의 끝인 이번 글은 끝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꽤나 아귀가 들어맞는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느새 시간은 새벽 세 시를 향해 가고 있네요... 제 몸이 곧 있을 끝을 알고 시차에 대비하는 걸까요? ㅎㅎ 다음 편지는 정말 스페인에서 날아오게 되겠네요. 당분간은 정신이 없어 이렇게 긴 글은 쓰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글이 너무 길어서 당황했던 분들,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대신에 말라가를 담은 귀여운 사진들을 가져와 보겠습니다. 총총.
추신 1.
유튜브에 버스 안내음을 수집해 올리는 채널이 있다는 걸 아셨습니까? 저도 이번에 찾아보다가 처음 알았는데요, 채널 들어가보면 안내음 말고도 귀여운 영상들이 많더라니까요. 맨 위에 쓴 정류장 이름도 여기 영상에서 가져온 거였어요.. 생각나는 정류장 이름들이 다 맘에 들지 않아서 퍼왔습니다^^ 아래 사진을 누르면 그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