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링을 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시차에 대한 글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어요.
같은 지구에 사는데 누구는 나의 어제를 살고 누구는 나의 내일을 산다는 점이, 참 이상하면서도 매력적입니다. (왜 시험에서 마지막에 급하게 답을 고쳤는데 고치기 전이 맞았다는 걸 알았을 때, 무슨 짓을 해서라도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지잖아요. 그럴 때, 누군가는 내가 사무치게 돌아가고 싶어하는 바로 그 몇 시간 전에 살고 있는 겁니다. 신기하지 않아요? 근데 그럴땐 이 생각이 위로가 될까요 불난집에 부채질이 될까요.. 아무튼) 시차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과거, 현재, 미래는 명확하게 구분될 수 없다"는 평소 제 생각을 지구가 나서서 입증해준 것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이런 생각 여러분도 가끔 하시나요? 과거라는 건 뭐고, 미래라는 건 뭘까.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도, 방금 쉼표를 찍은 시점도, 바로 지금 이 순간마저도 따지고 보면 모조리 과거입니다. 지나간 것을 과거로 친다면 0.00001초 전도 과거라고 할 수 있겠죠. 시간을 쪼갤 수 없을 때까지 쪼개내어 과거를 규정하는 데에 성공한다 쳐도, 그 내용은 여전히 모호합니다. 과거는 사실일까요, 혹은 기억일까요? 순도 100%의 사실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주관적인 기억이 되어버리지는 않을까요. 미래는 또 어떻습니까. 우리는 아직 경험하지 않은 무언가를 미래라고 퉁쳐왔습니다. 아직 오지 않았기에 전혀 알 수가 없는 무언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래라고 인식하는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인식하는 순간, 무엇이든지 이미 과거가 되어버리는게 아닌가요?
애매하기만 한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현재의 지위는 한껏 위태로워집니다. 안그래도 모호한 과거와 미래의 중간, 그 어딘가에 현재가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현재에 집중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첫 번째 글에서 작년에 얻은 교훈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이번엔 작년에 했던 다짐이 생각나네요. “현재에 집중하자.” 이게 2023 작년 저의 가장 큰 다짐이었어요. 자꾸만 과거를 그리워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느라 현재를 낭비하는 것 같아서, 과거도 미래도 아닌 하루하루에만 집중하자고 다짐했었습니다. 다짐이란 원래가 어려운 거잖아요.. 어려우니까 다짐까지 하는 거잖아요? (혹시 눈치채셨나요?)
네 맞아요. 저는 여전히, 아직도, 현재에 집중하는 법을 모르는 것 같다는 게 본론입니다. 출국장을 향해 돌아서던 순간, 비행기 좌석에 앉던 순간, 앞으로 살아야 할 집을 처음 마주한 순간, 이전까지의 모든 과거가 그리움으로 몰려왔습니다. 바로 어제 가족들과 저녁을 먹던 시간이, 엊그제 강아지와 산책을 하던 시간이 영영 돌아가지 못할 시간처럼 느껴졌죠. 게다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시간뿐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20시간을 날아와 전혀 다른 공간에 있게 되었어요.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기라도 하는데 공간은 몸으로 느껴지는 탓에, 이곳에 온 첫 날은 온통 그리움과 후회뿐이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에 ‘그리움이’ 라는 캐릭터가 있었다면 바로 그 자체였을 것 같네요. 있었어도 슬픔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만요..)
하지만 그 시간들 역시도 과거가 되긴 하더군요. 당연히 아직 이 시차와 공차(공간 차이)에 적응중이기는 합니다만.. 어떻게 하면 적응을 잘 할 수 있을지 답답한 마음에, ‘적응하다’라는 동사를 사전에 검색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