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 많으시죠?*
오늘의 편지는 기사회생했습니다. 제가 편지 쓰는 것을 하마터면 잊을 뻔 했지 뭐에요. 원래는 수요일 아침만 되면 "내일은 메일을 써야지. 이번 주는 무슨 내용을 쓸까?"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했었는데, 이번 주는 목요일 밤 아홉시가 되어서야 "아 참!" 하고 떠올랐어요. (참고로 한국과 이곳의 시차는 8시간이기 때문에, 한국 시간으로 금요일 정오에 발송하기 위해서 저는 금요일 04시까지 편지를 써야만 합니다.) 어제와 엊그제 시험이 있었던 데다가 오늘은 약속을 두 개나 다녀와서 정신이 없었나봐요. 편지를 까먹을 뻔했다니.. 이젠 별소리를 다 한다구요?
이 편지의 본질이 바로 그것입니다. 별소리!
* 지난주에 이어서 안녕하시냐고 묻지 못할 국가적 형편이 계속되고 있는 바, 박정민이 과거 문학동네 메일링에서 썼던 것을 보고 인상 깊었던 인사말을 차용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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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가 끝나갑니다. 다음 주에 마지막 수업만을 남겨두고 있어요. 그런데 이상한 점은,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도 2~3주 뒤인 1월에 기말시험을 본다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마지막 수업의 바로 다음 수업이 시험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말이죠, 이곳에서 매우 중요한 크리스마스 연휴를 일찍부터 누리기 위해서, 또는 공부할 시간을 충분히 주기 위해서일까요? 이상한 점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다니는 말라가 대학교는 개강 1주차부터 9주차까지의 시간표와, 10주차부터 15주차까지의 시간표가 다른 과목이 많습니다. 또한 후반 주차에는 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수업을 하는데, 수업 내용은 양쪽이 똑같아요. 이건 왜 그런 것일까요? 시간표의 유동성 확보와 그룹 실습이 필요한 과목들을 위한 것일까요.
이처럼 이곳은 한국과 미묘하게 다른 점이 많습니다. 또 예를 들어 볼까요. 한국의 '1+1', 이른바 '원 플러스 원'을 스페인에서는 '2×1', '도스(2) 뽀르(por) 우노(1)'라고 씁니다. 2 곱하기 1이라는 뜻인데요, 결과적으로 물건을 구매한 사람이 얻는 혜택은 한국의 '원 플러스 원'과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서로 다른 표현을 쓰는 것일까요?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준다.
하나를 사면 두개를 준다.
그저 같은 말을 다르게 하는 말장난처럼 보일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문구 차이가 우연히 생겨난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판매자는 구매자가 물건을 구입하도록 만들기 위해 문구 하나를 만들 때도 심혈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구매자의 심리를 주도면밀하게 예상하고 자극하려고 했겠지요. 하나의 값으로 두 개를 얻는다는 간단한 의미조차 서로 다르게 표현한다는 것은, 그만큼 문구를 받아들이는 구매자들의 심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아닐까요.
1+1과 2×1가 갖는, 이 미묘하고도 의미심장한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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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에 이곳에서 영화 <한공주>를 보았어요. 말라가대학교의 동아시아 학과에는 한국을 다루는 수업들이 많은데요, 매년 한국 주간을 설정하고 그 주간동안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관련한 행사를 진행합니다. 올해는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를 연극으로 올리기도 하고, 한강 작가님 책의 주제로 컨퍼런스를 열기도 했습니다. <한공주> 상영도 한국 주간 행사에 포함되어 있었는데요, 말라가 시내에서 한국 영화를 상영한다고 하니 궁금해서 가보았어요. 한국어 음성과 스페인어 자막으로 되어 있어 번역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유심히 보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재밌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때 밀어드릴까요?"라는 주인공의 물음에 상대역이 "아니 괜찮아~"라고 답하는 장면이 있는데, 자막이 "Sí"라고 나오더라구요. Sí는 yes를 의미하거든요. 잘못 번역됐나? 싶었던 찰나에 다음 장면이 나오는데, 주인공이 때를 밀어주고 있더랍니다.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 내심 때를 밀어주길 바라는' 뉘앙스가 있었고, 그걸 곧이곧대로 'No'라고 쓰면 스페인 사람들은 "싫다고 했는데 왜 때를 밀어주고 있지?"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 심리를 반영해 'Sí'로 번역한 것이었어요.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그 에두른 동의의 뉘앙스를 알 것 같아서 웃기면서도, 이런 사소한 데서부터 문화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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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길거리나 대중교통에서 느끼는 차이도 많은데요, 어딜 가나 유모차나 휠체어를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는 버스에 유모차나 휠체어가 타는 것을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한데, 이곳에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요. 거의 모든 버스가 저상 버스이고, 휠체어를 위한 빈 공간이 있으며, 지하철 역에는 안전한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카페나 음식점에는 야외 테라스 좌석이 많아서 휠체어 타신 분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고, 대부분의 쇼핑몰, 카페, 음식점의 화장실에는 수유대가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를 떠올리면서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당장 제가 한국에서 학교를 가기 위해, 그것도 편도에 두 번이나 타야하는 마을버스부터가 높은 계단을 올라야 탈 수 있거든요. 물론 시설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휠체어나 유모차 사용하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도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식의 부족이 시설의 미비로 드러나는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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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요즘은 이곳이 한국보다 '낫다'고 느껴지는 점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초반에는 한국이 마냥 그립기만 했는데, 어쩌면 이곳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표시일까요. (아주 편지도 까먹고 말이죠. 허허.) 하지만 한국이 좋고 한국을 그리워하는 감정과 이 문제는 별개인 것 같습니다. 이곳의 좋은 점을 발견한다고 해서 제가 유럽에서 평생 살고 싶다고 느끼지는 않거든요. 한국보다 좋지 않다고 느껴지는 점도 있는 것이 사실이구요.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글을 봤는데(인터넷에 있는 의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만), 우리가 선진적이라고 생각하는 유럽의 문화도 그것이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하는 글이었습니다. 한때 가졌던 패권으로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착취했던, 그러한 역사도 지금의 문화적 발전을 이루게 된 배경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니, 현실로 드러난 문화와 인식의 차이를 단순하게만은 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문화는 좋다고 느껴지는 점과 나쁘다고 느껴지는 점을 혼합하여 갖고 있으며, 좋고 나쁨이나 발전과 후진으로 나눌 수 없다는 그런 종류의 생각이요.
하지만 목소리가 작은 (혹은 작게 들리도록 사회가 왜곡하는) 누군가에게 한국은 너무나 살기 힘든 곳이 맞고, 그 현실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도 여전히 절실합니다. 그저 교환 생활 초반에는 눈에 보이는 차이를 찾아보았다면, 요즘은 더욱 미묘하고 복잡한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1+1과 2×1의, 가까우면서도 먼 그 간극에 대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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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1.
눈치채셨나요? 오늘은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만큼 작년 이맘때 한국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넣어봤습니다. (사실 이번 주에 여기서 찍은 사진이 많이 없었어요ㅎㅎ) 이 영화는 그때 본 <윤희에게>라는 영화입니다. 끝에 주인공이 편지를 읽는데, 맨 마지막 대사가 '추신, '으로 시작합니다. 참 여운이 남는 대사였어요. 어쩌면 저의 추신 집착(?)이 이 영화로부터 시작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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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2.
연말 특집으로 하나의 주제로 3주의 편지를 작성하는 특별기획을 생각해보는 중인데요, 어떤 주제가 좋을까요... 넓고 추상적일수록 좋습니다. 혹시 추천할 주제, 키워드 등이 있으시다면 마구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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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elo___oo
(아이디 중간에 언더바가 세 개나 되는데 다들 몰랐죠? 히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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