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넘어갑니다.
12월 31일도, 1월 1일도. 생각해보면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흔한 365일 중 하나입니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 사이에 넘어가는 것은 둥근 해(🌅)뿐만이 아닌 2025년 한 해(🗓️)라는 점이 특별할 뿐이지요. 우리는 그렇게,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특별할 것 없는 날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때때로 그 의미들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가장 큰 예시로 생일날이 있지요. 1년이 지나는 동안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돌아오는 어느 날일 뿐이지만, 우리는 내 생일을 빌어 내 삶을 돌아보기도 하고 다른 이의 생일을 빌어 내 삶에서 그 사람이 갖는 의미를 돌아보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특별함을 부여받은 날들에게는 ‘돌아보게 함’이라는 의무가 함께 주어집니다.
12월 31일과 1월 1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한 해를 돌아보게 만드는 부담스러운 특별함을 위촉받은 날들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또 그에 맞추어 리액션을 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건 딴 얘기인데요. 작년에 친구랑 경주월드에 놀러갔을 때, 바이킹을 탔는데 맞은 편에 탄 초등학생들이 힙합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래퍼들처럼 저희에게 호응 유도를 하는 거예요. 심지어 애티튜드가 아주 프로페셔널했음. 그래서 저희도 그에 맞춰 소리도 지르고 그쪽 바이킹이 올라갈 때면 저희가 호응 유도도 하고 그렇게 상호작용을 했답니다.) 그니까 제 말은, 연말이 되었다면 응당 그에 맞추어 한 해를 돌아봐주는 리액션을 취해줘야 마땅하지 않은가 하는 말입니다. 뭐 그 돌아봄의 결과가 썩 탐탁지는 않더라도요. (제 경우에는 일단 그러한데요. 이 정도면은 1년을 돌아볼 때 뿌듯하고 막 만족스러운 기분이 드는 일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싶은 의문까지 듭니다. 그런 분들이 계신다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진심이에요. 오늘 밤은 발 쭉 뻗고 주무시고 내일 아침에는 복권 한 장 사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말라가에서 돌아왔던 6월 말, 그때부터 저희 이야기가 멈춰있는 것 맞지요? 저는 한국에 들어오고 이틀 뒤부터 인턴십을 시작했어요. 방학 내내 인턴을 했고, 인턴이 끝난 뒤 이틀 텀을 두고 또다시 개강이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찾아와서 속수무책으로 학교에 다녔답니다. 학기 초반에는 오랜만에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해내느라 정말 있는 정신 없는 정신 다 끌어다가 쓰면서 진땀을 뺐고요, 후반에는 미적지근한 적응을 해서 그런 대로 학기를 잘 마쳤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에 개인적으로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요. 모두 설명하자면 정도껏 구차해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피차 깔끔한 재회를 위해 이렇게 요약해보았습니다. 딱딱한 몇 개의 문장들로 6개월의 시간을 갈무리하려니까, 어히구 적잖이 헛헛한 마음이 드네요.
그래서,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셨어요?
여러분의 올해는 어떠셨어요?
12월 31일이 다가오면서 이 편지가 다시금 떠올라 새벽 두 시에 노트북을 두드리게 된 이유는, 바로 이 질문을 구태여 던지고 싶어서였습니다. 스페인에서 매주 써보냈던 이 편지에 담겨있던 가장 큰 의미 역시도 ‘돌아봄’이었던 것 같아요. 1년마다 돌아오는 생일날처럼, 매주 돌아오는 편지를 통해 금요일에 어떤 종류의 특별함을 부여하고 싶었어요. 돌아봄의 명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편지가 여러분의 한 주에 책갈피가 되어주기를, 내 맘 같지 않게 흘러가는 마음들의 인덱스가 되어주기를 바랐습니다. 마음이라는 건 참 변덕스러워서 잠깐 한눈 파는 사이에 어딘가 찌그러지거나 부풀어오르기 십상이니까요. 사람들이 그런 각자의 마음들을 잘 들여다봐주고 보살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저는 항상 하거든요.
다들 이미 올해를 정리하고 돌아보고 계시겠지만요, 누군가 직접적으로 물어봐준다는 건 또 다른 느낌이잖아요. 저는 진심으로 궁금해요. (유 퀴즈~? -제 최애 예능 프로그램은 구 버전 유퀴즈랍니다). 여러분의 봄은 어땠는지, 혹 꽃구경도 다녀오셨는지. 여름에 수박은 많이 드셨는지, 올 가을은 어떤 노래를 들으며 타셨는지, 첫 눈이 온 날에는 무얼 하셨는지, 가장 좋아하는 겨울 간식은 무엇인지(단연 붕어빵이라 생각합니다만), 이 시린 겨울에 어디서 따뜻함을 찾고 계시는지. 이런 거요. 거창하지 않은 그 모든 돌아봄을 응원합니다. 또 돌아보았을 때 드는, 아쉽거나 후회스럽거나 슬프거나 아프거나 하는 모든 감정 역시 최선을 다해 응원하려고 합니다.
긴 리본끈의 양쪽 끝을 둥글게 모아 맞닿게 하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원이 되듯이요, 한 해의 끝도 또 다른 해의 시작으로 이어지잖아요. 어찌 보면 끝과 시작이라는 건 구분할 수 없는 걸지도 몰라요. 모든 시작은 어떤 것의 끝이고, 반대로 모든 끝은 어떤 것의 시작이 될 수 있으니까요.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어둠도 언젠가 돌아보면 끝난 지도 모르게 새로운 시작의 싹이 되어 움틀 수도 있는 일이고요. 그러니까 빙빙 돌려 결국 이야기하고 싶은 말은, 슬픈 끝은 기쁜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에요. 기쁜 끝이라면 더더욱 좋겠지만요, 우린 둥근 리본 안에 있으니 또 슬프다 보면 기쁜 날도 금세 돌아오지 않겠어요?
흐르는 시간은 언제나 우리 편에 서있어주진 않는 것 같습니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기 마련이니까요. 사랑은 비극이고, 그대는 내가 아니고, 추억은 다르게 적히는 법이니까요. 앞으로 총 몇 번의 희망과, 몇 번의 절망과, 차가운 웃음 혹은 기쁨의 눈물을 맛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행운을 진심으로 빌겠습니다.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