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목요일 밤이 찾아왔습니다.
어김없이 저는 노트북을 열고 책상 앞에 앉았지요. 근데 이제 감자칩을 곁들인.. 스페인에는 감자칩이 엄청 많습니다. 과자 종류의 반이 감자칩인 것 같아요. 그만큼 맛도 있어서 요즘 여러 종류의 감자칩을 시도해보는 중입니다. 어김없이 플레이리스트도 틀어 두었습니다. 제목은 '[playlist] 걍 살면 되지 않을까 클래식'인데요, 요즘 힙하다고 많이 뜨는 채널이라 한 번 들어보고 있습니다. 의자에 앉아 클래식을 틀어놓고 감자칩을 먹으며 어떤 내용을 쓸까 생각하고 있으니, 영화 속 사이코패스가 된 느낌이네요. (그건 무슨 느낌이냐고 하실 수 있는데 원래 영화같은 데 보면 혼자서 클래식 듣는 인물은 90퍼센트의 확률로 사이코패스거든요)
아무튼, 자 이어서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은 어떤 글을 쓸까..." 이런 순간은 제가 그닥 달가워하는 시간은 아닙니다. 저는 많은 경우에 하고 싶은 말이 먼저 떠오르고, 그걸 글로 써내거든요. 그런 경우엔 고민할 필요 없이 요며칠 내 머리를 지배하던 생각을 글로 풀어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써낼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게 바로 오늘이냐구요? 네... 여러분은 일주일에 하나씩 글을 쓰라고 하면 어떤 내용을 쓰시겠어요? 그리고 제가 질문을 하면 답을 간단하게 써주셔도 좋겠어요. 정성스러이 써주신 답글은 정말 감사하게 받았습니다. 하지만 꼭 답글이 길거나 심오해야 할 필요는 전혀 없거든요! 편안한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니 좀 써주어보세요. 왜 갑자기 불똥이 이리로 튀냐구요? 죄송해요.. 사실 제 머리가 복잡해서 괜히 투정을 부렸습니다.
읽으면서 느끼셨을지 모르겠지만, 쓸 주제가 단번에 떠오르지 않는 것은 생각이 없어서라기보다 생각이 많아서일 때가 많습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횡설수설 섞여 있어서, 그것들이 하나의 주제로 정리되지 않아서, 무슨 말을 써야할지 모르게 되는 것이죠. 오늘도 사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주제 후보들은 많았는데요 (ex. <말라가 관찰일지>, <본분이라는 것>, <비유가 수반하는 비약> 등), 하나를 온전히 써내기가 어려워서 빙빙 돌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숨기고 쿨한 척 사진 하나만 띡 보내놓을까 생각도 했지만, 또 그럴 마음은 못 돼서요. 정면돌파하기로, 일단 이런 복잡한 머릿속을 고백하기로 결정한 겁니다.
제가 지금 듣고 있는 플레이리스트의 이름이 '걍 살면 되지 않을까'라고 말씀드렸죠. 저는 이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걍 사는 것. 최근에 읽은 책에 이런 문장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그냥은 살지 않는다." 제가 그냥 살지 않게 된 것은 일기를 쓰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일기를 매일 쓴 지는 1년 반 정도가 되었는데, 이제는 일기를 안 쓰고서는 어떻게 살 수가 있나 싶습니다.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과 그때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면 무언가 찝찝한 기분이 들어요. 마치 콜드브루 커피를 내리는 것처럼, 모든 종류의 일들이 머릿속에서 생각을 거쳐 어떠한 의미가 되어야만 속이 시원합니다. 생각이 많으면 물론 좋은 점이 많지만, 그리고 그런 저라서 제가 저인 것이지만, 가끔은 피곤하기도 합니다 지금처럼요.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반추적 사고가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고 말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그게 맞다면 아주 큰일인데요... (물론 지금 이 글이 더 큰일인 것 같기는 합니다. 정면돌파하면 뭔가 의미있는 내용이 생각날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요즘 드는 생각을 털어놓자면 이런 겁니다. 말라가에 오기 전에는 특별한 경험이나 여행보다도 이곳에서 '일상을 보내는 경험, 살아보는 경험'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와보니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해야하지 않나 싶고, 평소였다면 안 갔을 곳들, 평소였다면 안 걸었을 말들에 용기를 내어봐야 하는거 아닌가 싶더라구요.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찾아 나서야 할 것 같다가도, 또 그런 건 없다는 생각이 들고. 내 방식대로 시간을 보내면 된다 싶다가도, 그렇게 가만히 보낸 날들을 시간이 지나면 후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기대가 너무 컸던 것도 아닌데 왜 실망하는 기분이 들지? 오히려 기대를 좀 했어야 했나?" 뭐 이런.. 답이 없는 생각들을 전전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항상 "난 왜이렇게 생각이 많을까"로 귀결되는 뻔한 엔딩.
엊그제는 일기를 쓰는데 이미 26일 동안이나 보았던 September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더 아름답고 애틋하게 느껴지더라구요. 9월도 거진 끝나가고 있다는 의미였겠죠. (근데 저는 아직까지도 August와 October를 헷갈립니다. 왠지 August가 10월같은 느낌이 난단 말이에요.) 가을은 독서의 계절입니다. 그리고 책은 마음의 양식이죠. 고로 가을은 마음의 양식이 필요한 계절입니다. 고픈 마음이 불러온 생각과 고민들을 있는 그대로 맞아들이는 날도 필요하겠지요.
그런 지금이 가을밤이라는 사실이,
아직은 우리가 셉템버에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는 밤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셉템버, 노래 많이 들으시고, 생각 많이 하시고, 고민도 많이 하시길. (저만 당할 수 없지요ㅎㅎ)
추신1.
오늘 글은 정말 두서없는 일기처럼 되어버렸네요. 조만간 말라가 관찰일지를 더 발전시켜 돌아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의 이야기도 좀 들려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말인데, 스페인에 대해, 말라가에 대해, 또는 외국 생활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시다면 답글로 남겨주세요! 오늘처럼 어떤 내용을 써야할지 모르겠을 때에 유용히 참고하겠습니다. 오늘은 아쉬운 대로 이곳 말라가의 셉템버 사진 몇 장 덧붙이며 줄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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