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 말라가 속에 피어난 공간*
(*심리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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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시리고 (콩) 발이 시려운 (콩)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는 복숭아가 밍밍해지고 귤이 달아지는 중입니다.
11월의 첫 주가 유난히 느리게 지나간 느낌입니다.
시간이란 참 이상하지요.
제가 정말 비밀 하나 말해드릴까요,
지난 주에 이곳의 시간이 한 시간 느려졌습니다.
한국과의 시차는 하루아침에 7시간에서 8시간이 되었습니다. 하계철에 적용되는 썸머타임이 끝나면서, 앞당겼던 시간을 다시 표준시로 돌려놓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던 저는 아주 날벼락을 맞은 셈... 은 아니구요. 사실 시간이 바뀐 것이 제 생활에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게 뭔가 너무 이상하지 않으세요? 사람들이 맘대로 시간을 앞당겼다가, 어느 날 다시 되돌린다니요. 썸머타임이 시작되는 날은 새벽 1시 59분이 지나면 바로 3시가 됩니다. 또 썸머타임이 끝나는 날은 새벽 2시 59분이 지나면 다시 새벽 2시가 됩니다. 똑같이 새벽 1시부터 8시까지 잔다고 치면 어느 날은 6시간을 자게 되고, 어느 날은 8시간을 자게 되는 것이죠. 단순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런 경우를 한 번 생각해봅시다. 썸머타임이 끝나는 날 새벽 2시 30분에 아기 A가 태어납니다. 그 뒤로 30분이 흐르고 2시 59분이 다시 2시로 바뀐 그 시점에, 또 다른 아기 B가 태어납니다. 그럼 B는 A보다 늦게 태어났는데도 불구하고 기록상으로 A보다 30분 일찍 태어난 것이 됩니다. "뭐 그렇게까지 생각하냐, 태어난 시간은 사주 볼 때만 쓰는 거 아니냐"라고 하실 수 있겠는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어째서 저는 이런 애매한 경계를 고민하게 되는 것일까요. 아무튼, 시간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추워지는 계절과 요상한 썸머타임이라는 게 합세하여 시간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네요.
시간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오늘은 공간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전에 말라가의 분위기 맛집이 궁금하다고 써주신 답장이 있었는데요, 이곳에 온지 두 달이 지난 지금, 조금씩 애정을 갖게 되는 공간들이 생겨 소개해보려고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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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첫 번째는 Q pro quo라는 카페 겸 서점입니다.
이곳은 학교 근처 카페를 알아보다가 발견했는데, 마침 친한 언니로부터 추천받은 곳이기도 했습니다. 1층은 친구와 수다를 나누기에 좋고, 책이 더 많은 2층은 혼자 공부를 하거나 독서를 하기에 좋습니다. 책이 있는 공간은 높은 확률로 좋은 것 같아요. 책이 소리를 흡수하는 느낌이랄까요. 그 많은 책이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시끄러울 만도 한데, 그 이야기를 들으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서 조용한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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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오면 창밖 의자들 사진을 많이 찍게 됩니다. 의자의 색이 비추는 햇빛과 만났을 때 이곳의 분위기가 완성되는 느낌이랄까요. 말라가의 거리를 다니다 보면 테라스에 손님이 다 마시고 간 커피잔이나 술병이 남아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떠나고 난 자리를 보고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들어요. 특히 빈 술병 여러 개가 놓여있을 때에는, 그 자리에 앉아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지가 궁금해집니다. 이런 작은 상상에서 노래 한 곡, 책 한 권, 드라마 한 편이 시작되는 것 아닐까요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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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항구에 있는 던킨도너츠 테라스입니다. 지난 주 메일에 보낸 사진 속 공간이기도 하죠!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됐을 때는 한여름이라 해가 쨍쨍하기도 했고 테라스에 앉아있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는데, 날이 선선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테라스에 자주 앉게 됩니다. 며칠 전에는 포케를 사들고 가서 이곳에서 산 아메리카노랑 같이 먹었는데요, 테라스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휴대폰으로 유퀴즈를 보다가 혼자 박장대소를 해버렸습니다. 꽤 오랜 시간 그렇게 웃었는데 주변에서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은 것이 신기하네요. 유럽은 유럽인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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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퀴즈를 보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앞에 있는 크루즈에서 아이들이 방방을 뛰고 있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가던 번동 방방월드와는 차원이 달랐는데요... 대신 여기에는 사장님이 같이 뛰어주는 서비스는 없겠지요. 방방월드에서 사장님이 직접 뛰어주셨던 날을 잊지 못합니다.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스릴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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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에 이 약국 앞의 사진이 유독 많은 것을 보니 이곳도 제가 좋아하는 장소이자 분위기 맛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번도 들어가본 적은 없지만 지나갈 때마다 괜히 사진을 찍게 되는 곳입니다. 시내의 중앙 광장에서 저희 집쪽으로 걸어가는 길에 있어서, 시내에 들렀다 가는 날이면 꼭 이곳을 지나게 됩니다. 특히 밤이면 은은한 불빛이 더욱 아름다워서인지 잠시 멈춰서 바라보고는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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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역이 약국 앞에게: "네가하면 나도한다!"
일단 역이 학교 바로 앞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좋았는데요, (역에서 내려 사람이 가득한 버스를 타고 가지 않아도 된다니!) 게다가 역이 예뻐서 지하철을 탈 때마다 기분이 조금씩 환기됩니다. 등교할 때는 마냥 좋지는 않지만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좋고, 하교할 때는 그냥 좋아요^^. 열차가 지상으로 올라와있는 역이어서, 한국에서 잘 볼 수 없던 생경한 풍경이라 더 예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분위기 맛집을 소개하는 글이었는데 그냥 제가 좋아하는 공간 소개가 되어버렸네요?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공간은 대부분 분위기도 좋으니까요 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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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하면 공원이 빠질 수 없습니다. 이곳은 지난 주말에 처음 가본 공원입니다. 사실 말라가에 와서 생각보다 큰 공원이 많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이래봬도 제가 뉴욕의 센트럴 파크, 파리의 튈르리 정원, 서울의 북서울꿈의숲(?)을 모두 가본 사람입니다. 북서울꿈의숲이 어디냐구요? 저희 집 앞에 있는 공원인데, 초등학생 때는 허구한 날 봉사활동으로 쓰레기를 주우러 간 곳이자 사진작가님이 어색한 포즈를 요구해 결국 다시는 꺼내보지 않게 된 졸업사진을 찍은 곳이라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집 앞에 그렇게 크고 좋은 공원이 있는게 생각보다 더 소중한 것이었다는 걸 클수록 느낍니다. 말라가에 넓은 잔디가 펼쳐진 공원이 많지는 않지만, 공원에 아이들과 강아지가 있다는 것만으로 공원은 제 역할을 다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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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제게 정말 큰 의미를 갖는 존재입니다. 내가 물리적으로 있는 공간이 편안하고 마음에 들면 그 공간에서의 경험, 시간, 나 자신의 모습까지 좋아질 때가 있습니다. 그 좋은 기억으로 살아가다가, 또 좋은 기운이 필요할 때면 다시 그 공간을 찾게 됩니다.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있던 공간은, 그간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별 것 아니라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공간'을 사전에 검색해보니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범위'
라는 뜻이 나오네요.
역시 공간은 심리적인 개념도 포함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공간*은 어떤 곳인가요!
추신1.
추신수 (그냥 이렇게 써보고 싶었어요. 최근에 박정민의 책을 읽었더니 그의 유머가 좀 흡수된 듯 합니다. 박정민이 이걸 보면 욕을 하려나요)
추신2.
지금 듣고 있던 플레이리스트의 배경으로는 '하우스 오브 바이닐'이라는 공간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보고 가보지 못했던 곳인데요, 망원동에 있다고 하니 근처에 가실 일이 있는 분들은 들러보셔도 좋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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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elo___oo
(아이디 중간에 언더바가 세 개나 되는데 다들 몰랐죠? 히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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