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입니다. 이 시의 제목을 알고 계신가요? 모르는 분들은 운이 좋으신 겁니다. 자신만의 제목을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요. 시의 내용에 해당되는 것들이, 누구에게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바로는 떠오르지 않더라도, 조금만 숨죽이고 생각해보면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려서 버리기에 아까운' 많은 것들이 떠올라 오히려 자신을 괴롭히게 될지도 몰라요. 그러니 너무 깊이는 생각하지 않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걸 왜 이제 말하냐구요..?) |
|
|
공평하게 저도 한 번 생각을 해보자면요, 거의 모든 것들이 그렇지 않나 싶은데요.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게 "아직 너무 많이 오지 않았어, 버리기에 하나도 아깝지 않아"라고 당당하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이 많으신가요? 영수증 하나도 마음에 들면 벽에 붙이는 저로서는, 쉽게 버릴 수 없어 고충인 것들이 더욱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지금까지 가지고 살아온 성격인 것 같아요. 이미 너무 오래 이런 성격으로 살아왔고, 성격 덕분에 얻은 것들도 물론 많습니다. 하지만 성격에는 좋지 않은 부분도 있기 마련이고, 그 부분들을 선택적으로 버리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죠.
비단 성격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세상의 정말 많은 것들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장점과 단점을 머릿속 시소에 올려보고, 장점이 크면 단점을 감수하기를, 단점이 크면 장점을 포기하기를 선택... 하면 되긴 합니다. 그런데 사람 일이 어디 그렇게 무 자르듯이 되나요. 많은 경우에 시소는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합니다. 아예 평형을 이루는 경우도 있죠. 바로 여기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밤을 지새우게 하는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면, 저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자주 하는데요. "작은 일에 웃으려면 작은 일에 울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작은 일에 웃기 위해 기꺼이 작은 일에 울기도 하겠다." 가끔은 시소가 움직여서, "작은 일에 웃지 않을 테니까 울지도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마음이 바뀌기도 합니다. |
|
|
이곳에 오면서 주변 환경이 크게 변했습니다. 집도, 학교도, 친구들도, 먹는 음식까지도요. 거의 모든 것이 바뀌고 나니, 바뀐 환경 속에서도 바뀌지 않은 제 성격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바뀌지 않는 그 약점과 단점들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성격의 시소는 소문난 변덕쟁이입니다. 심지어 성격의 경우 장점과 단점이 분리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장점이 그 자체로 단점이 되고, 또 단점이 그 자체로 장점이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성격은 버리기에 너무 아깝고, 실은 버리고 싶지 않은 것이 됩니다. 내 성격으로 살아온 시간들을 생각하면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린 느낌이 듭니다. 어쩌면 너무 많이 오는 동안 성격에 정이 들어버린 것일지도요.
이럴 땐 어찌 합니까, 어떻게 할까요~
를 묻는 것은 아니구요. 그냥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이 계실까 싶어서요. 11월이잖아요. 실재하지 않는 뭔가를 자꾸 돌아보게 되니까요. 그러다 보면 어디선가 서리 맞은 장미 한 송이가 날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게 꼭 나같기도 하고, 뭐 그러니까요. 오랜만에 이야기 좀 나누고 싶었습니다.
참, 시의 제목은 <11월>입니다. |
|
|
추신1. 최근에 이곳에서 들은 귀여운 대화를 수집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요, 이번 주에 들은 귀여운 문장 하나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 "Es su priemra vez a la calle"
= 그녀가 거리로 나온 첫 번째 날이야.
말라가에서는 거의 모든 곳에 반려견과 함께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제는 외국인 거주 등록증을 수령하러 경찰서에 갔었는데, 어떤 분이 강아지를 데려오셨더라구요. 퇴근하신 직원분 같았어요. 다른 사람들이 강아지를 보며 귀여워하자, 그분이 강아지를 안고 저렇게 말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강아지를 다시 보니 어린 아기 강아지였더라구요. 정말 귀여웠어요…
추신2.
여러분이 이 편지를 받아보실 때면 저는 독일에 있을 거예요! 내일 아침에 공항으로 가야해서 수요일 밤인 지금 편지를 미리 써놓습니다. 이번 편지는 조금 미지근할 수도 있겠네요. 저번 주 편지는 영상을 하루만에 만드느라 거의 용광로였는데, 어떻게 잘 받아보셨는지 모르겠어요 ㅎㅎ. |
|
|
@cielo___oo
(아이디 중간에 언더바가 세 개나 되는데 다들 몰랐죠? 히히)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