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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편지의 제목이 기억나시는가요?
첫 인사말은 너무 어렵다는 투정이었지요. 그 후로 4개월간 편지를 써왔는데도 첫마디를 적어내는 것은 여전히 매우 어렵다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언제부터인지 흔한 인사말을 쓰기 전에 멈칫하며 고민하는 시간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지 않은 누군가에게는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잘 지내지 않는 누군가에게는 “잘 지내시죠?”라는 말이 생선 가시처럼 귀에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생선 가시가 귀에 걸리지는 않지만요.. 다들 잘 알아들으셨죠?) 지난 31일 밤 우리 모두가 예사롭게 해피뉴이어를 외치지 못했던 일도, 해피하지 않은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해피뉴이어라는 인사를 건네는 사람에게는 목엣가시처럼, 듣는 사람에게는 귀엣가시처럼 걸리도록 만든 연말이 야속하게만 느껴집니다.
저는 여전히 여행중입니다. 며칠 전 런던에 있을 때 향수 가게에 갔었는데요, 테스터로 뿌려봤을 땐 별로여서 구매하지 않았던 향이 밤에 숙소에 와서야 좋게 느껴지더라구요. 시간이 흐르고 나서 느껴지는 은은한 향이 뿌린 직후의 향보다 훨씬 좋았어요. 이런 향을 베이스 노트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향수를 뿌리고 처음에 나는 일시적인 향은 탑노트, 1시간 정도 지속되는 핵심적인 향은 미들노트, 그리고 2시간 이후까지 지속되는 휘발성이 낮은 향이 베이스노트입니다. 탑노트와 미들노트가 날아가고 그제서야 느껴지는 베이스 노트, 그 잔향이 특히 더 좋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왜 또, 향수조차도, 시간이 지나야만 좋게 느껴지는 걸까요.
전에 보냈던 편지 중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라는 제목의 편지를 기억하시나요? 시간과 마음을 쓰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있는게 아닐까, 무언가를 나중이 되어서야 깨달았다면 그건 그냥 나중이 되었기 때문에 깨달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라고 말하는 글이었습니다. 제가 편지에 그런 내용을 썼던 것은, 어쩌면 지금 모르고 있다고 느껴지는 무언가에 대한 합리화였던 것 같아요. “지나고 나면 무엇이든 깨닫겠지, 지나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지나고 보면 어떤 의미든 생기겠지.” 이런 마음에서요. 그런데 지난 며칠 동안에는 또 다른 질문을 마음에 품게 되었습니다.
다 지나가기 전까지의 과정은요,
그동안에는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요?
그게 너무 궁금합니다.
한 해가 막 지나간 지금, 길고 길었던 12월이 지나간 지금, 아직 지나가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지나갈 것이라 믿으며 지나고 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도 믿고 있지만 언제 지나갈지는 모르는 아픔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지나가기까지 우리는 어떻게 버텨야 할까요. 또 어떻게 하면 잘 지나보낼 수 있을까요? 그동안 제대로, 잘 지나보내지 못한 모든 것들이 우리 안에 남아서 목에, 귀에, 눈에 가시가 되었습니다. 걸리적거린다는 의미의 가시가 아닙니다.
한 번 박힌 이상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최대한 아픔을 줄였어야 했고, 상처는 났지만 치료하려고 노력했어야 했던, 그런데 그러지 못했던, 그래서 여전히 우리를 아프게 하는. 그 모든 것들의 상징이 가시라고 할 때, 지금 이 시간이 지나가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또 다른 가시가 박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해가 바뀌었으니 어찌저찌 지나가고 새로 시작하자는 의미의 새해가 아니라, 지금은 지나가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는 어둠이지만 그 속에서 한 번 더 희망을 품어보게 하는 새해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그러기 위해 지나야만 하는 시간들이 아직 막막하지만요. 좋지 않았던 탑노트의 향이 날아가고 남은 베이스 노트의 향은 정말 다행히도 좋았으니까요. 그 향을 맡게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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