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스물은 어떠셨나요?
어느덧 스무 번째 편지지를 꺼내들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 현재 시각도 오전 2:00를 가리키고 있네요..)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를 썼으니, 제가 이곳에 온지도 140일이 넘어간다는 말이 되겠네요. "시간이 빠르다"라는 말은 이제 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 말만 덜 해도 시간이 덜 빠르게 갈 것 같거든요.
제 스물이 끝나갈 때 썼던 글을 다시 펼쳐 보았습니다.
"2022년과의 관계에서 난 남아있는 쪽인 것 같다. 그 이유가 2022에 좋은 기억이 많았기 때문이라면 좋겠지만, 실은 아쉬운 기억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더 크다. 2022를 시작할 때 가졌던 기대가 컸어서 그런지, 그만큼 아쉬운 점도 많았다. 그래서 난 2022를 훌훌 털고 떠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남는 쪽을 택했다."
이렇게 썼더군요. 생각보다 잔잔하고 어둡기는 했지만 결국 지금 2022라는 숫자를 떠올리면 알차고 재밌었고 따뜻했다는 생각과 함께 애틋한 마음이 드는데 말이지요. 여하튼 위의 글은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보통 남는 쪽은 아쉬운 쪽, 잊지 못한 쪽, 미련을 버리지 못한 쪽이기 때문에 불쌍하거나 안타깝게 보여지고는 한다. 근데, 남아있는 게 선택의 결과라면? 불쌍하기보다 오히려 좀 멋있는 일 아닌가.? 친구나 연인같은 사람간의 관계이든, 또는 사람과 대상간의 관계이든, 물리적으로 A가 B를 떠났다고 해보자. 그랬다고 해서 무조건 B가 남겨진 존재가 돼버리는 것은 아니다. B가 그 관계를 떠날지 거기에 남을지는 아직 B의 선택에 달려있다. 떠나고 남고는 결국 마음먹기 마련이라는 거다."
이곳에 와서 처음 썼던 편지에서도 남는 쪽과 떠나는 쪽에 대해 말했었는데요, 5개월 전에 훌쩍 떠나온 쪽이었던 저는 이제 여지없이 남는 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한 학기동안 이곳에서 친해졌던 사람들이 한국으로 떠나갈 채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두 학기를 수학하는데, 대부분의 교환학생들은 한 학기동안만 머무르거든요. "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1년이나 신청했을까, 겁도 없지"라는 마음 반, "한 학기였다면 너무나 짧게 느껴졌을거야, 이번 학기를 연습삼아 다음 학기에 더 잘 지내보자"라는 마음 반. 이었어요 얼마 전까지는.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말하려다가도, 이번 학기에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 멈칫하게 됩니다. 연습이라고 말하기에는,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이 참 좋았거든요. 그들은 이제 떠나가고, 저는 이곳에 남습니다. 오늘 친한 교환학생 친구들과 저녁을 먹었는데, 떠날 날을 앞두고 있는 친구들이 이곳의 소중함과 떠남의 아쉬움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자리를 마치고 혼자 집에 걸어오는 길이었습니다. 거의 도착했을 즈음, 겨울을 맞아 흐드러지도록 열매가 열린 귤나무에서 갑자기 귤 하나가 툭 떨어집니다. 뉴턴의 사과를 떠올린 것도 잠시, 그 귤의 낙하가 제게 "정신 차려"라고 말하는 하늘의 목소리처럼 느껴졌어요. "떠나고 나서 아쉬워하지 말고, 있을 때 한 마디라도 더 건네라"는 그런 목소리처럼요.
떠나기 전에는 떠나는 사람이, 떠나고 나서는 남아있는 사람이 더 아쉬워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일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제가 떠나는 이들의 아쉬움을 너무 뜨뜻미지근하게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나중에 분명 이를 후회할 거라는 생각도요. 처음에는 각자 이곳으로 '떠나온' 입장이었던 사람들끼리 만나서 이제는 '떠나갈'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는 것, 돌아보면 꽤나 특별한 일입니다. 떠나가기 아쉽다고 느낄 만큼의 새로운 기억을 이곳에서, 이 사람들과 만들었다는 뜻이니까요. 그런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된다고, 떨어지는 귤이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요, 눈물이 참 많은데 이상하게도 종업식이나 졸업식때는 한번도 울어본 적이 없습니다. 분명 친구들 선생님과 헤어지는게 아쉬웠는데 눈물은 나지 않았어요. 아무도 울지 않는 이상한 지점에서 눈물이 터지고, 모두가 우는 지점에서는 울지 않는 청개구리. 집에 걸어오면서 이 청개구리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생각해 보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결말이 좋게는 떠오르지 않더라구요. 아무도 울지 않을 때 우는 것은 괜찮을지 몰라도, 모두가 울 때 울지 않는 일은 언젠가 후회할 것만 같습니다. 그리 멋지지도 않고요.
그래서 이 편지를 빌려 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