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많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들 눈은 잘 피하셨나요? 혹은 잘 맞으셨나요. 폭설로 인해 교통이 마비되고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으면 잠시 숙연해지게 됩니다. 자연의 위대함보다는 인간의 나약함을 생각하면서요.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 눈을 보고 있자면 그 눈이 정말로 무언가를 가려주었으면 싶기도, 녹으면서 정말로 무언가를 씻어내려 주었으면 싶기도 합니다. 눈은 많은 것을 바라게 만들면서 또 많은 것을 단념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저는 마구 여행을 다니는 중입니다. 방학동안 집에서 잠을 잔 날이 열흘도 안 되니까, 정말 말그대로 마구 여행중인 것이 맞지요? 집사모(집을 사랑하는 모임, 실제로는 없음)의 명예회원인 저로서, 이렇게 여행을 많이 하는 시기는 쉽게 다시 오지 않을 거란 예감이 듭니다.
오늘은 왠지 하고픈 말이 많아요. 눈내린 풍경이 하얀 종이같아서 그곳에 편지를 적어넣고 싶은 것일까요? 말꼬를 튼 김에 갑작스러운 고백을 하자면, 제게 글쓰기는 ‘땅에 붙어있기 위한’ 행위입니다. 땅에 발을 붙이고 잘 서있기 위한 행위요. “그럼 누구는 둥둥 떠서 사느냐”, “중력이 있으니 당연히 땅에 붙어있지 뉴턴이 들으면 큰일날 소리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없어요). 저는 둥둥 떠서 산다고 느껴지는 때가 종종 있거든요.
바로 여행할 때가 그렇습니다. 일단 집을 떠나있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공중으로 2센티 정도 떠오르구요. 하루하루 바쁜 일정을 소화하다보면 일기가 밀리기 일쑤라는 점, 일기가 밀리면 해야할 생각들도 밀린다는 점에서 2센티 더 뜨게 됩니다. 게다가 여행 전에 끝내지 못한 일들, 여행 후에 해야 할 일들이 있다면 여행에 온전히 집중하기는 더욱 어려워지죠. 여행의 날들은 이렇게 자기부상열차처럼 레일에 닿지 않고 조금 떠서 운행됩니다. 평소보다는 어딘가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으로, 자연스럽지 않은 마음으로요. 끝이 정해져있는 특별한 시간과 공간이 여행인데, 그런 여행에서까지 자연스럽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요. 오히려 부자연스러움이 여행다움을 구성하는 것은 아닐까요.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나봐요. 여행을 일상처럼 보내기가 어려워서.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여행을 일상처럼 보내는 것과 일상을 여행처럼 보내는 것, 전자와 후자 중에 무엇이 더 어렵게 느껴지시나요? 그리고 이 둘은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것 같나요? 저는 그동안 둘이 정비례한다고 생각해왔는데요, 긴 여행을 떠나와있는 지금, 긴 여행 속 짧은 여행들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은 둘이 반비례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일상을 여행처럼 보내는 쪽에 가까웠는데, 그래서 여행을 일상처럼 보내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거든요.
오늘은 하루종일 입을 다물었다가 아무도 없는 밤에 친구 눈사람에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신난 눈사람 모드가 되어 조잘조잘 편지를 적어보았습니다.
하얀 눈을 보며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