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바오의 한 헌책방에서 발견한 엽서입니다. 유럽에서 헌책방을 구경하다 보면 이처럼 예전에 누군가가 썼던 편지를 읽게 되곤 하는데요, 읽어보는 것은 재밌지만 실제 사람이 실제 사람에게 보낸 편지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것을 소장하기까지는 조금 망설여집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이 받은 사람에게 보라고 쓴, 그것도 엽서를 사서 손으로 직접 적고 우표까지 붙인 편지인데, 전혀 생뚱맞은 누군가가 소장한다는 것이 이상하잖아요.
그런데 이 편지는 코스타 델 솔에서 빌바오로 부쳐진 편지라는 점에서, 생뚱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스타 델 솔(Costa del Sol)은 말라가에 있는 지역이거든요, 말라가 공항의 이름도 ‘코스타 델 솔 공항’이구요. 저와 편지는 말라가에서 빌바오로 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편지가 저보다 조금(36년) 더 먼저 이곳에 와있었기는 했지만요. (편지에 자세히 보면 날짜가 적힌 도장이 찍혀있어요. 이곳은 날짜를 우리와 반대 순서로 적는답니다? 저는 아직도 가끔 헷갈려요...)
말라가에서 이 편지를 적어 빌바오로 보냈던 분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요. 36년 전 할머니에게 부쳤던 생일 축하 편지가 빌바오의 한 책방 엽서함에 들어있었다는 걸 알고 계실까요? 말라가에서 온 한국인 교환학생이 이 편지를 들고 다시 말라가로 가고 있다는 걸 알면 어떤 기분이 드실까요.
편지는 부쳐지는 순간 보낸 사람의 손을 떠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어쩌면 또 편지는, 읽혀지는 순간 받은 사람의 손을 떠나는 것일 수도 있을까요? 그 편지는 다른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는 편지로 쓰일 수도 있을까요. 편지의 예시에 음악을 포함시킨다면, 우리는 만든 사람의 손을 떠난 음악을 듣고, 그 음악을 다른 이에게 들려주기도 하며, 편지의 발신인과 수신인을 몇 번이고 고쳐쓰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편지 역시 매주 금요일 정오, 이곳 시간으로는 매주 금요일 오전 4시 이후부터 제 손을 떠난 것이 되겠습니다. 편지를 언제 읽을지, 어디서 어떻게 읽을지, 아니면 닫아둘지, 또는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할지. 이것들은 여러분의 몫이 되겠구요. 또 여러분이 편지를 읽고 나면, 그 편지는 누구의 것도 아닌 것이 되어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합니다. 요즘 들어, 매주 보내는 편지가 내용과 형식 면에서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 아닌가, 너무 재미가 없는게 아닌가, 그래서 많이들 안 읽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었거즌요. 이번을 계기로 편지를 쓰는 제 몫도, 편지를 읽을 여러분의 몫도 조금은 가벼이 여겨보려 노력해야겠습니다.
편지는
부쳐지는 순간, 읽히는 순간
저만의 길을 가는 것이니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