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입니다.
낮시간에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것 말이에요.
그말인즉슨 끊임없던 여행이 일단락을 내렸다는 뜻, 동시에 끊임 있는 방학도 막을 내렸다는 뜻입니다. 끝난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 일상으로의 복귀에 대한 안정감을 더 크게 느끼는 것을 보면, 그만큼 충분히 긴 여행을 했나봅니다. 숙소 침대에 누워서, 또는 이동하는 비행기나 버스에 앉아서 휴대폰 메모장을 켜고 편지를 쓰던 지난 몇 주가 제게도 쉽지만은 않았어요. 바쁜 여행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정신줄을 부러 놓고 있었던 저의 상태가 글에 여실히 드러나는듯해 무렴하기도 했구요.
그런 나날을 마치고 이제 다시 일상을 시작하는 제 새로운 책상은, 여행의 흔적으로 가득합니다. 프라하에서 사온 귀여운 눈사람 엽서, 빌바오의 디자인 샵에서 물건을 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챙겨나온 브로슈어,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마니또 선물로 받은 카드 세트까지. 원래도 잡동사니가 많던 방에 출신이 한층 화려해진 새로운 잡동사니들이 각자의 자리를 차지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여행이 남기는 것은 무엇인지를 여행 내내 고민하던 저 자신이 떠오릅니다.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결과, 이렇게 실물로 존재하는 것들이라도 가방에 담아온 것이 아닐까 싶어서요.
"이렇게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여행을 함께하는 모두가 각자의 품을 들여야만 하는, 그런 여행이 남기는 것은 무엇인가? 여행하는 동안 느끼는 자유로움과 즐거움? 여행의 기억 그 자체? 또는 여행의 기억을 추억할 미래의 날들인가? 그뿐인가?"
어떤 것을 떠올려도 항상 "그뿐인가?"라는 생각이 뒤따랐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런 질문과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여행이 길었기도 했지만,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습관이 여행에서까지 이어진 탓이 크겠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정답은 찾아내지 못했고, 시간이 흘러 머릿속에서 그 의미가 부유하기를 기다릴 뿐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한가한 오랜만의 오후,
여행이 끝나고 다시 궤도에 오른 어느 오후,
책상 곳곳에 놓인 여행의 흔적들을 보니 이것들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같습니다. 당장 그리 큰 의미를 남기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일단은 이 엽서들과 사진들, 쇼핑백과 마니또의 선물. 그것들의 남음만으로도 위로가 됩니다.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며 지난 학기가 남긴 의미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던 지난 며칠의 조급함도, 곧이어 가라앉는듯합니다. 이곳에 온 것 자체를 하나의 긴 여행으로 여기자는 지나간 어느 편지의 다짐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또 예상할 수 없는 때에 편지는 제 해설지가 됩니다. 이러려고 편지 쓰지, 생각하며 미소를 머금고 이만 줄입니다.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