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평소에는 안녕하세요가 아닌 다른 말로 편지를 시작하려고 노력하는데, 오늘은 그냥 이렇게 쓰고 싶었어요. 일종의 일탈이랄까요. 이런 것도 일탈로 쳐주나요?
대체 일탈이란 무언가요. 매주 보내는 이 편지를 빼먹으면, 아주 짧게 쓰면 일탈이 될까요? 그러고 나면 저는 간만의 일탈에 만족하며 한층 더 자유로워진 일주일을 보낼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누가 일탈을 이렇게 계산하고 재면서 하나고요? 안 해본 거 티 난다구요? 그러게요, 맞습니다. 저는 일탈과 거리가 먼 사람이에요. 탈출하고 싶을 만큼 일상이 싫었던 적이 없었다. 고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겠지요. 특히나 누구보다 일주일의 쳇바퀴를 열심히 굴리는 우리같은 한국인들에게 말입니다. 그냥, 일탈이 줄 것이라고 예상되는 기쁨이 일상을 유지하는 데서 올 것이라고 예상되는 안정감을 이긴 적이 없어서, 라고 말하면 이유가 될까요. 누군가는 이 문장을 '용기가 없어서'라는 쉬운 말로 번역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도 일정 부분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럴 것이라고 예상'될 뿐인, 다소 근거가 빈약한 판단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가 어떠한 판단을 내릴 때는 과거의 데이터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내 지난날을 기반으로 계산해낸 예상값은 다른 어떤 근거보다도 합리적인 근거가 될지 모릅니다. 그 예상에 의해 우리는 선택을 하고, 내가 선택한 현실만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의 결과는 영원히 알지 못한 채 말이죠. 그런 점에서 인간의 삶이란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택할 수 없었던 그 많은 것들을 원망하다가도, 막상 선택권을 갖게 되는 때가 오면 그 결과가 원망할 대상은 이제 자기 자신이 됩니다. 차라리 선택할 수 없어서 마음껏 원망할 수라도 있길 바랄 때도 있죠.
아무튼(이라는 말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납작하게 만들어버리고 싶지 않지만, 편지를 마무리할 때면 또 '아무튼'만큼 좋은 단어가 없어 오늘도 눈을 질끈 감고 아무튼 적습니다. 역시 인생은 잔인해.), 제 말은 이거예요. '내 생각에 ~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내용만을 갖고 내리는 판단을 비난하기에는, 그만큼 적중률이 높은 판단의 근거가 없지 않은가.. 예상과 반대되는 일이 일어날 거란 기대에 베팅하는 것이 용기라면,
그럼 저는 용기가 부족한 게 맞겠네요. 돌연 싱거운 마무리가 되어버린 것에 대해 싱거운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생각해보니 사과가 싱거우면 좀 슬픈데요, 취소하고 달콤한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