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은 어떻게 지내셨나요?
말을 건네는 문체가 아닌 평서문으로 편지를 쓰면 그 다음 편지에서는 괜히 안부부터 묻고 싶어집니다. 지난 주에 이어서 저는 오늘도 밖으로 나와보았습니다. 오늘은 큰 고민 없이 자주 오는 집 근처 카페로 왔습니다. 지난 주 편지 쓸 곳을 찾아다닐 때 원했던 분위기가 바로 지금 이곳의 분위기와 같은 것이었는데요, 역시 원하는 것은 간절히 찾을 때가 아니라 의식하지 않을 때 찾아오나 봅니다.
지금 제 앞에는 이미 몇 입 먹어보고 감탄하는 절차를 마친 레몬 케이크와 함께 까페 꼰 레체가 놓여있습니다. 근래 본 친구들 중 가장 큰 갈색 강아지가 제 앞을 지나칩니다. (강아지는 아무리 커도 '개'라고 부르면 정없는 느낌이에요) 앞 테이블에서는 방금 들어온 손님과 어린 아이가 점원과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오, 점원이 아이를 가볍게 들어올려서 테이블 위에 앉힙니다. 이곳에 살다 보면 점원과 손님이 서로 친한 사이인 듯 이야기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는데요, 그럴 때마다 어떤 사이일지 궁금해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그냥 손님과 점원 사이 관계, 그뿐인 것일까요. 그뿐인 관계에서도 저렇게 친절하고 친근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곳인 걸까요 여기는? (앞 테이블 손님은 이곳의 직원들 모두와 아는 사이인 것을 보아 아무래도 전에 이곳에서 일한 적이 있는 분인 것 같습니다. 이곳의 사장님일 수도 있겠구요.)
지금은 목요일 오후 8시 16분입니다. 집에서 카페까지 걸어오는 동안이 해가 넘어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밝은 시간대였는데요, 해질녘의 길거리와 그 위의 사람들이 유독 예뻐 보였습니다. 제가 지금 사는 곳은 관광객이 북적이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건물도 중심가에 있는 건물들보다 투박하고, 길은 깨끗하지 않고, 밤 늦게는 거리에 사람이 적어서 처음엔 조금 무섭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곳에 걸어오면서는 제가 새로운 이 집, 이 동네에도 점점 정을 붙여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노을빛의 힘이었을까요? 참, 이곳은 이제 비가 그치고 다시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흐린 날의 노을은 울결하고 조용하며, 화창한 날의 노을은 명랑하고 요란한 법이지요. 오늘의 화창한 노을은 동네 이곳 저곳을 한층 명랑하게 만들었습니다.
한편, 땅거미가 지는 시간이 아슴아슴 찾아올 때면 하루를 잘 보냈다는 수고로움보다 하루가 또 허망하게 지나간다는 잉여로움을 느꼈던 날들을 떠올리며, 지금은 이 시간을 맞는 데에 더 익숙해졌다는 것 또한 느낍니다. 단순히 그전에 없던 여유를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고, 그저 이제야 이곳의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했다는 느낌입니다. 제출기한이 지난 과제를 뒤로하고 이 편지를 먼저 쓰고 있다는 것부터가요, 한국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니까요.
이제 이곳을 떠나기까지 3개월에서 4개월 남짓한 시간이 남았습니다. 어느새 지내온 날보다 지나갈 날이 훨씬 적게 남게 되었어요. 역시 총량이 정해진 모든 것에 있어서 양쪽이 평형을 이루는 순간은 포착하기가 힘들며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아까 점원과 놀던 아이가 방금 집에 가기 싫다고 바닥에 앉아버리기를 시전했습니다.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어디 계속 지켜보지요.) 왜 무엇이든지 방금 전까지 어렴풋했다가 한 순간에 반짝 선명해지고 또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인지. 말하고서 보니 방금 지나온 노을의 시간도 어쩜 그렇습니다. 분명 걸어올 땐 밖이 밝았는데, 창밖을 바라보니 언제인지도 모르게 한밤중처럼 캄캄하게 변해 있습니다.
오늘도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꼬박꼬박 찾아오는 이 편지가 일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무언가라는 점에서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동떨어진 곳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며 불현듯 위화감을 느끼는 저에게도요. 위로라는 말을 너무 자주 사용하는 듯한 느낌이 있는데요, 어째 자꾸만 그렇게 되는 요즘입니다.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변하는 모든 것들을 바로잡을 수는 없는 대신, 변해가는 쪽이 바른 쪽이 되도록 만들어야겠지요.
오늘도 총량이 정해진 하루를 살아가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슴아슴한 시간의 노을을 포착할 수 있는 하루가 되시면 좋겠습니다. 이곳의 땅거미 지는 시간을 담아 보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