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그 많은 것을, 전철을 타고 가는 길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잊은 혹은 잃은 것을 찾기 위해 하는 것이 여행일까요? 제게 여행은, 차라리 잊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하는 것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여행이 꼭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말라가에 오고 나서 여행에 관한 글을 많이 읽었습니다. 여행을 통해 잊고 있던 것을 찾았다는 이야기는 수많은 여행기에 등장하는 클리셰입니다. 그런데 그런 식의 이야기가 제게 유달리 와닿지 않았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요. 애꿎은 반골 기질이 발휘된 덕택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무엇보다 저는 조금 슬펐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일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어떤 특별한 것을 여행에서는 찾을 수 있다는 점이, 그럴 수 있다고 믿는 점이 말이에요. 결국 우리의 인생에서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일상인데, 거기서는 무엇을 잃고 가끔씩 떠나는 여행에서 그걸 찾는다는 말은 일상을 너무 낮춰말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일상이 듣기에 서운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여행만큼이나 일상을 특별한 것인 마냥, 아껴 다루고 좋아하려고 애써왔습니다. 애쓴다고 해서 좋아지지 않는 일상이 태반이었지만요, 특별한 것을 특별하게 여기는 것보다 특별하지 않은 것을 특별하게 여기는 것이 더 멋있으니까요. (단순한 단어 선택 사과드립니다.)
(자세를 고쳐 앉으며) 한편, 저는 지금 여행을 떠나있습니다. 오늘 하루에만 세 개의 국가에 머물렀는데요, 스페인에서 크로아티아를 거쳐 슬로베니아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기차에서도, 스페인에서 크로아티아로 가는 비행기에서도, 크로아티아에서 슬로베니아로 오는 버스에서도 어떤 과거의 분실물을 발견하진 못했습니다. 잃어버리고 잊어버렸던 것이 떡하니 거기에 있지는 않더랍니다. 다만 여행을 하다 보면, 잊고 싶지 않은 감각이 무엇인지, 잊을 수도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언뜻 떠오르기는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슬로베니아에 도착하여 쌩쌩 달리는 버스를 타고 가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지나치는 것조차 아쉬웠습니다. 창밖에서 산책히는 귀여운 강아지를 조금 더 보고 싶은데 꼭 그럴때 신호가 바뀌어 차가 출발할 때, 그런 사소한 감각에서 잊고 싶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잊고 싶지 않다는 말은 곧 잊을 수도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여행에서 느끼는 감각들은, 어찌 보면 일상에서도 느껴온 감각들일지 모릅니다. 언제나 버스 창밖으로는 귀여운 강아지가 지나가기 마련이니까요. 여행에서 잊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들은 일상에서 잊어왔을 수도 있는 것들이 된다는 점에서, 여행은 잊은 걸 찾게 해준다는 말이 맞게 들리기도 합니다. 그동안 여행에 대한 글들의 클리셰에 앙심을 품어온 제 반골 기질이 역시나 애꿎은 것이었지요. 오늘도 애꿎은 편지를 읽어주신 것에 감사하며!
추신1.
글에 잃음과 잊음이 마구 혼재한다는 걸 쓰는 도중에 느꼈습니다. 하지만 여행가는 버스에 빠꾸는 없으니까요! 모쪼록 잘 읽어주시길 기대합니다.
추신2.
버스는 잡념을 풀어헤치기에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창밖에 수많은 것들이 머무르지 않고 지나가니까요, 머믈러 있는 것은 내 안의 생각 뿐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여행하는 동안 버스에서 찍은 사진들을 편지에 넣어 보았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잡념을 잘 떠올리게 되는 장소가 있으신가요? 또는 최애 버스가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