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듣는 노래가 있나요? 어떤 노래인가요?
때때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어쩌면 그 사람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 사람의 생을 꿰뚫는 핵심이, 다름아닌 비 오는 날 듣는 노래에 담겨있을 수 있다는 것, 공감이 되시나요? 물론 비를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비 오는 날에 별다른 노래를 듣지 않으시는 분들도 계실 테고요. 저는 비가 오면 떠오르는 노래가 생기고 나서부터 비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어제 이곳에도 비가 내렸습니다. 한창 화창한 날들이 이어지다 오랜만에 내린 비라 반갑기도 했고, 여행을 앞두고 시작된 비라 애석하기도 했어요. 오늘은 그래서 어젯밤 비오는 창밖을 두고 들은 노래들을 소개해 드릴까 했는데요. 무언가 내키지 않는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네, 사실 저는 답을 알고있어요. (언제나처럼 자문자답으로 시작하는 편지… 이젠 없으면 서운하실걸요?) 요즘 ‘취향을 전시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거든요.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면 카드뉴스 형식으로 무언가를 큐레이션하는 계정이 정말 많잖아요. 어떤 공간이나 음악, 인물, 콘텐츠 등을 소개하기 위해 사진에 글을 쓰고 디자인해 업로드하는 계정들이요. 이런 형식의 계정들이 많아지면서 그 게시물들이 취하는 스타일이 몇 개의 유형으로 정형화되고, 또 각각의 유형 안에서 보편화되면서 그런 게시물들을 보는 것에 대한 피로감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너무 많은 것들이 1차, 2차, n차로 소개되는 상황 속에 있는 것만으로 에너지가 소진되는 기분이랄까요. 물론, 제가 그런 게시물들에 관심을 보여 알고리즘의 신이 저를 그 소굴로 밀어넣은 덕분에 더욱 강하게 피로감을 느낀 것이겠지만요.
자신의 취향 또는 다른 누군가의 취향을 분류하고 모아서 공유하고, 또 그 게시물에 호응하는 이 흐름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지, 고민하게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이에게도 알리고 싶은 마음 그뿐일까요? 혹은 내가 관심있어 하는 것을 다른 이도 관심있어 한다는 것에서 얻는 반가움일까요. 다른 누군가의 취향을 좋아하는 것만으로 내 취향을 그것에 위탁하고 싶은 마음은 아닐까요?
그 모든 마음들이 공존하겠지요. 그리고 그 마음들은 다 좋은 마음이고요. 여러 다른 사람의 취향에 영향을 받아 내 취향을 형성하는 것은 당연한 것을 넘어 바람직한 일일 겁니다. 그것이 취향을 만들어가는 정도(正道)가 아닐까요.
그래서 어쩌라고, 라고 물으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단지 너무 많은 우리가 하나의 플랫폼에 너무 오래 머무른 탓에, 그런 마음들이 표현되는 방식이 획일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아쉬운 정도예요. 이런 고민을 굳이 해야 할까 싶지만서도, 누군가가 하지 않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요. 제가 하지 않는 고민은 또 다른 사람들의 고민으로 남아있겠지요.
그래서 이 얼렁뚱땅한 편지는 비오는 어제, 어쩌면 어쩌다 들은 노래들로 마무리지어볼까 합니다. 여러분이 비오는 날마다 듣는 노래를 알려달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꿰뚫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여러분도 어쩌다 들은 좋은 노래가 있다면 알려주셔도 좋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