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복... 항복입니다
편지를 부친 지도 어느새 9개월 째.
언젠가 이런 날이 찾아올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했지요.
이런 날이 무슨 날이냐고요? 졸음에 항복하는 날이요...
2주 연속 짧은 편지를 보내게 되어 아쉽지만, 쉼이 있어야 다음 할 말이 생기는 거니까요. 머뭇거림 뒤에 꺼내는 말이 한층 더 궁금해지는 법이니까요! 라는 말로 슬쩍 넘어가봐도 될까요..?
아쉬움을 뒤로하고 (졸림을 뒤로하고), 오늘도 여행에서의 사진 몇 장을 부칩니다. 사진들에 제목을 붙이자면, '네덜란드에서 본 초록', '초록의 힘', 이 정도가 되겠습니다. 온 세상이 초록을 외치는 때가 돌아왔습니다. 이맘 때만 볼 수 있는 자연의 초록은 정말이지 강력해서 어떤 수식어를 붙이기도 송구스러워요.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세상에 꺼내져서 그저 천진하게 색을 내뿜는 것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인 양, 새순은 그렇게 내일이 없다는 듯이 녹색을 뿜어냅니다.
어릴 적 교과서에 한국은 사계절이 있는 나라라고 쓰인 것을 볼 때마다, "사계절이 없는 나라는 얼마나 없길래 사계절을 이렇게 강조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계절의 구분이 상대적으로 모호한 곳에 살아보니, 그토록 명확하게 네 개의 계절이 구분되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느꼈어요. 한국도 봄과 가을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고 여름과 겨울은 더 극악해지고 있지만, 그렇게 편차가 심한 날씨를 1년 내내 분주히 겪는 일은 한편으로 특별한 경험일 수 있겠더라고요.
이런 말을 태평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초여름까지입니다. 습하고 더운 한국의 여름 속에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는 과연 지켜봐야겠지요. 그러니 우선, 이 파릇한 여름의 시작을 즐기자! (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