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글은 써야겠어서, 지난 주말 오랜만에 다이어리를 폈습니다. 투표하러 마드리드까지 세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갔었는데요. 당일에 돌아와야 하는 짧은 나들이였지만 또 카페를 들르지 않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마드리드에서 꼭 커피를 마시며 다이어리를 쓰리라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 무거운 다이어리도 챙겨간 터였거든요.
선선한 마음으로 글을 쓴 것은 오랜만이라 다음 문장을 고민하게 된 순간들도 많았지만, 그 결과로 선선한 글이 나온 것 같아 만족스럽게 다이어리를 덮었습니다. 그 글의 일부를 옮기며 오늘의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선선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
5.24 토. 📍MADRID, Hola coffee
마드리드에 왔다! 세 번째 마드리드에서 오랜만에 다이어리를 쓰는군요. 요즘은 정말 별로 심각한(?) 생각이 없다. 여행하는 시간도, 말라가에서 보내는 시간도 더 가벼운 마음으로 보낼 수 있게 된 지는 좀 됐다. "오늘은 또 무얼 해야 하루가 가려나..." 같은 생각을 덜 한다. 한국에 두고 온 그리움보다 말라가에 두고 갈 그리움을 더 많이 떠올린다. 갈 때가 가까워져서야 이곳을 즐길 줄 알게 되는게 치사하고 모순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그 시기가 오니까 이게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진다. 지금이라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한국의 풍경을 떠올리면, 정말 어제까지도 거기에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있는 곳은 아직 지구 반대편 여기인데, 한국에 갈 날이 가까워질수록 그 풍경도 가깝게 느껴지니 참 이상하다. 처음 왔을 땐 한국이 무슨 우주 저 멀리 떨어진 행성 같았는데. 알량한 처세술이다. 그게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이 시간은.
3월까지만 해도 그동안 말라가에서 보낸 시간들이 전혀 정리되지 않아온 느낌이었는데, 4월 정도부터 그 시간들에 인상이 생기고 의미가 생기고 있는 것 같다. 아직 한 마디로 표현하긴 어렵고 그러고 싶지도 않지만, 정말 예상치 못한, 거대하고 묵직한 무언가를 가져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건 눈에 보이지도 않고 어디 가방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살면서 언젠가 분명 꺼내보게 될 것 같은 무엇이다. 사실 한국에 가서 이런 감상이나 열정적인 자기 성찰 과정에 대해 누군가에게 설명할 일이, 누군가 그걸 진심으로 궁금해할 일이 많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때 느끼는 정동을 그 누구와도 백 퍼센트 공유할 수 없듯이.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외로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좋은 무언가를 내 안에만 간직하는 것도 배우고 싶은 것들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잘된 일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바로 그 지점이 내 20대의 첫 번째 챕터를 갈무리할 수 있게 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20대의 첫 챕터를 넘겨가고 있다는, 쓰면서도 이상하고 소름이 돋고 코가 찡해지는 그런 생각이 놀랍게도 드는 요즘이다. 이것만으로도 교환학생 생활이 내게 얼마나 묵직한 한 방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겠을 정도다.
암튼, 한국에 돌아가면 정말 언제 말라가에 갔다왔냐는 듯, 너무 익숙한 풍경 속에서 다시 익숙한 삶을 살게 될 걸 안다. 10개월을 어디 갔다왔다는 사실이 무색하겠지. 너무나 익숙하겠지! 그 감각을 생각하면 좀 무섭기까지 한다. 그 또한 자연스러운 반응이겠지. 그래도 지금 여기서 보낸 시간들이 사라지지는 않는 거니까. 여기에 이렇게 있었어 나! 잘 있었어. 라고 미래의 나에게 외치고 싶다.
일단 아직 남아있는 앞으로의 한 달을 맞을 생각에 기대가 된다. 두고 갈 것들을 마지막으로 볼 때 내 얼굴이 어떨지, 마음이 어떨지 모르겠다. 그게 기대된다. 예견된 그리움을 기대하는 마음이라니. 과연 처음 느끼는 것이다. 엄청 커다란 무언가다!
------ |